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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통의 전술, 입지, 지형

by bibianinto 2024. 10. 7.

우리나라의 전통의 전술은 어떤 것이었는지 살펴보고, 남한산성의 입지와 지형에 대해서 알아보겠습니다.

산성축조에 유리한 지형
산성축조에 유리한 지형

 전통의 전술

우리의 오랜 군사적 전통은 지형적으로 유리한 산성을 축조하여 활용하는 청야입보의 전술이었다. 청야입보란 유사시에 거주지를 깨끗이 비우고 준비된 인근 산성으로 들어가 농성하는 것으로 적이 아군의 식량이나 무기를 활용함을 막고, 퇴각 시에는 추격하여 섬멸하는 작전으로 언듯 보면 소극적인 전략전술로 보일 수 있으나, 저항의 바탕은 전국에 우수한 산성이 마련되어 있었기 때문에 가능한 전통의 전술이었다. 이러한 청야전술의 우수성에 대한 예로, 고구려 신대왕 8년(172)에 한나라 대군이 침입해 왔을 때, 국상이 이르기를, 지금 한 병은 천리 길에 군량을 옮기므로, 오래 견디지 못할 것이니 만약 우리들이 심구를 파고 고루를 쌓고 들판을 비우고 적의 피로함을 기다리면 그들은 반드시 한 달 이내에 돌아갈 것이니, 그때에 정병을 내어 치면 승리할 수 있을 것이다라고 하였다. 이러한 청야전술의 결과로 한나라는 대군이 대패하여 필마도 돌아가지 못하였던 사실이 있다. 순조 때 발간된 만기요람의 관방총론에서, 옛 적에 당 태종이 고구려를 치려고 여러 신하들에게 계책을 물으니, 모두 “고구려는 산을 의지하여 성을 축조하였기에 쉽사리 함락시킬 수 없습니다. 그 뒤에도 거란이 고려를 치려고 함에 그의 신하가 간하기를 고려 사람은 산성의 새처럼 산성에 깃듭니다. 대군이 가서 공격하다가 성공을 거두지 못할 뿐만 아니라, 자칫하면 제대로 돌아오지도 못할 것입니다.”라 하였다. 이를 통해 우리나라는 전통적으로 적절한 위치에 산성을 축조하여, 이를 바탕으로 외적을 효과적으로 물리치기 위해 산성을 잘 활용하였음을 알 수 있다.

 

입지

 

남한산성은 삼국시대는 물론 고려와 조선시대에 이르는 기간 줄곧 중요 거점 또는 최고의 산성의 역할을 해온 성곽이다. 특히 조선시대에는 도성으로부터 불과 41리의 지근거리에 위치하여 있고, 축성된 위치가 사방이 자연해자 역할을 하는 하천 내로, 축성위치가 험준한 지세로 인하여 가장 믿음직한 보장지처로 활용하였다. 남한산성의 입지를 보면 북측은 한강, 동측은 남한강, 서측은 탄천, 남측은 경안천 등이 있어 산성의 사방이 천연적인 해자 시설로 둘러싸여 있어 입지적으로 요새라 할 수 있다. 이러한 우수한 입지에 마련된 산성은 성내에는 넓은 활용가능한 공간이 있고, 사방이 높은 능선의 지세를 따라 축성되었다. 고지와 능선을 따라 성벽을 축조함으로써 성벽형태는 자연스런 곡면을 이루고 있다. 이렇게 곡면은 다른 성곽에 마련되는 치성이나 돈대 등을 마련하지 않아도 되었다. 또한 산지의 은폐된 은밀한 곳에 많은 암문을 마련하여 외적이 모르는 곳에 외부와 연락은 물론 병력과 물자의 지원을 받을 수 있도록 하였다. 조선시대 남한산성의 수축과 지속적인 관리의 가장 중요한 목적 중의 하나는 유사시에 조정을 옮겨서라도 항쟁하기 위한 시설인 행궁을 마련하고 보전함이었다. 도성에서 남한산성으로의 입보 방법은 한성의 흥인지문이나 광희문을 통하여, 동쪽의 중랑포의 살곶이다리를 통학, 한강에서는 광진 등지에서 나룻배로 건넌 다음, 남한산성의 남문이나 동문을 통하여 성내에 쉽사리 입보할 수 있도록 하였다.

 

 지형

 

전통적으로 산성을 중시해온 우리나라는 산성 축조에 가장 적합한 곳은 고로봉 지형이라 하였다. 다산 정약용은 그의 저서 민보의에서 산성 축조에 가장 좋은 곳은 남한산성과 같은 지형이라 하였다. 즉 산성 축조에 가장 이상적인 지형으로 치는 지형은 고로봉인데, 고로봉이란 마치 삼태기와 같이 성벽이 마련된 사방은 높고, 성 안쪽이 낮은 지형으로, 예를 들면 남한산성과 같은 지형이라고 구체적으로 언급할 정도로 가장 우수한 지형에 축성된 성곽이었다. 다산 정약용 선생이 언급한 최고 지형인 고로봉과 같은 지형이 없는 경우에는, 다음 지형으로 산봉으로 산의 정상부가 평탄하고, 사방의 가장자리가 두절된 절벽지형을 말한다. 그다음 지형은 사모봉으로 마치 사모관대와 같이 생긴 지형으로 그러한 지형에는 앞과 뒤에 지휘소를 설치할 만한 곳이 있고, 양 봉우리 가운데 부분에는 성벽을 구축하여 인원을 수용할 수 있는 곳을 말한다. 이도저도 여의치 않은 경우에는 최소한 마안봉과 같은 지형으로 산의 양쪽이 높고 그 가운데가 낮아 마치 안장과 같은 지형을 말한다 하였다. 이렇듯 남한산성은 전통적으로 산성을 중시하는 우리나라에서 가장 이상적으로 여기는 고로봉 지형에 축조한 산성이었음을 알 수 있다. 지금까지 우리나라의 전통의 전술, 입지, 지형에 대해서 살펴보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