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고대국가의 수도 방어체계인 도성의 개념과 역사적 변천 과정을 살펴보고자 한다. 도성의 기본 개념과 황성의 의미를 정리하고, 최초의 성곽으로 알려진 왕검성을 시작으로 고구려 도성의 발전 과정을 고찰하겠다. 특히 고구려 도성제가 지닌 특징에 대해서도 함께 논하고자 한다.
도성의 개념
한 나라의 수도서울에 마련된 성곽을 도성이라 한다. 한 나라의 도읍지에 종묘사직이 마련된 것을 도, 그렇지 않은 것을 읍이라 구분하였다. 도성이란 종묘, 사직을 갖추어, 도와 성이 이루어진 의미로 궁성을 포함하여 수도를 둘러싸고 있는 외곽의 성곽까지를 다 함께 포함하는 의미라 할 것이다. 도성과 유사한 의미로 도, 국, 왕성, 경성, 경도 등 다양한 용어들이 있다. 그러나 이러한 것들은 비록 그 의미가 다소 다르나, 엄격한 의미의 구분은 두지 않았다. 또한 도성은 왕이 거처하는 왕성을 직접 가르치는 의미이든가 혹은 평상시 왕이 거처를 포함하는 정치, 경제, 사회, 문화의 중심지 전체를 이르는 의미로 받아들이고 있다. 이는 왕이 거주하는 왕성 또는 궁성과 외곽의 나성이 분리되는 중국식의 도성제가 자리 잡는 대략 6세기 이후의 일로 볼 수 있기 때문에, 그 이전의 경우는 왕성과 도성과의 엄격한 의미의 구분 없이 상황에 따라 편의적으로 사용되었을 가능성이 높다.
황성과 왕검성
또한 도성 내에는 왕성이외에 황성이란 것이 있다. 황성이란 황제의 거처를 둘러싼 의미도 있는 것으로 보인다. 황성유적의 예로 고려 수도인 개경에 궁성 외부에 마련된 황성이 마련되어 있음이 조사 보고 되어 있다. 문헌상으로 보이는 최초의 성곽인 왕검성은 성곽의 이름을 알 수 있는 중요한 의미를 지닌 성곽이다. 이 왕검성은 도성인지 여부는 명확히 언급하지는 않았으나, 기록상 이곳에서 우거왕이 1년여에 걸친 치열한 성곽전을 치른 것으로 보아 산성 형식의 도성이 아닌가 여겨진다. 현재 왕검성의 위치와 유구는 구체적으로 밝혀지지 않았는데, 요동 지역이나 평양지역에 있었다는 견해 등 왕검성의 위치는 다양하게 언급되고 있다.
고구려 도성제
삼국 중 가장 앞서 고대국가로 발전한 고구려는 최초의 도읍지로 환인의 흘승골성으로 천연으로 방어가 편리한 사방이 절벽으로 이루어진 산지에 축성을 하여 도읍지로 삼았다. 이어 천도한 도읍지는 압록강 북쪽 집안시에 위치한 국내성으로, 평지에 궁성을 마련하고, 인근 인접한 산지에 입보할 수 있는 대피성을 마련하였다. 이와 같이 평지의 궁성을 마련하고, 인접한 곳에 대피성을 마련한 형식의 도성제가 처음으로 조성되었다. 이후 이러한 도성제는 평양의 안학궁성과 대성산성에서도 보인다. 평지에 궁성을 마련하고 궁성 주변의 산지인 대성산에 대피성을 마련하는 제도는 백제와 신라에도 영향을 미친 것으로 보인다. 고구려의 마지막 도성인 장안성은 이전의 도성제와 달리 궁성과 대피성으로 구분하여 조성하지 않고, 궁성과 나성을 한 지역에서 결합된 형식으로 조성하였다. 이러한 결합된 형식의 도성제는 고구려의 장안성을 필두로 고려시대의 개성 그리고 조선시대의 한성으로 이어진 것으로 볼 수 있다. 지금까지 도성의 개념, 황성과 왕검성, 고구려 도성제에 대해서 알아보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