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려와 조선의 궁성 구조와 특징을 소개하겠다. 고려 개성의 만월대와 황성의 구조, 그리고 조선의 법궁인 경복궁의 궁장 건축 양식을 상세히 살펴보도록 한다.
고려
개성의 송악산 남쪽 기슭에 있는 고려의 왕궁지인 만월대는 궁전이었던 회경전을 중심으로 하는 구역이다. 건물은 정남에 승평문, 좌우에 동락정이 있었고, 신풍문, 춘덕문, 춘궁, 태초문이 있었다. 장화전, 원덕전, 장령전, 연영전, 자화전 등의 궁전과 왕이 거처하던 건덕전으로 태조 2년에 궁궐을 창건한 이해 홍건적의 침입으로 소실될 때까지 고려왕의 거처였다. 왕궁 터의 가운데는 정사를 처리하는 정전인 회경전이 위치하였는데, 위곽으로 둘린 궁장에 대한 조사내용은 보이지 않는다. 이러한 궁성을 둘러싸고 있는 것이 황성이다. 황성의 존재 사실은 의심하지 않으나, 이를 확인할 수 있는 자료는 현재 거의 남아 있지 않다. 다만 기록에서 황성의 둘레와 20개소의 성문 이름만 확인될 뿐이다.
조선
조선이 한양에 도읍을 정하고 처음 경복궁에 궁성을 마련하였다. 이후 갖은 전란으로 인하여 창덕궁, 덕수궁 등 여러 궁성으로 옮겼었다. 경복궁은 비록 오랜 기간 궁성으로 사용하지는 않았으나 법궁에 해당하는 궁성이다. 궁장 높이는 20척 1촌이고, 둘레가 1,813보, 즉 10,878척이나 되는 궁성으로 평면은 전체적으로 장방형의 형식인데 후원 쪽은 방형에서 벗어난 형식이다. 경복궁은 정문인 광화문을 비롯하여 사방에 성문을 두었는데 성문과 성문 사이를 연결한 성벽은 담장 형식으로 궁장을 마련하였다. 궁장은 궁궐의 권위를 나타내기도 하고 유사시 외적으로부터 궁궐을 안전하게 방비할 수 있는 구조여서, 일반 여염집 담장과는 규모나 구조형식을 다르게 축조하였다. 경복궁의 궁장은 폭 3m, 높이 6.6m나 되어 일반 협축된 성벽에 뒤지지 않는 규모와 견고성을 지닌 구조라 하겠다. 궁장은 지반 여건에 따라 다르나, 일정 깊이만큼 파서 단단한 지반에 기초하여 잡석 등을 잘 다진 다음 지대석을 마련하고, 하부에는 장대석을 2~3단 내외 양단에 놓고 그 위로 25cm 내외의 정방형의 사괴석을 이용하여 내경하면서 수직에 가깝게 쌓아 올렸다. 장석의 사괴석 사이사이에는 강회 줄눈으로 처리하였는데 줄눈의 형식은 볼록 줄눈으로 하였다. 그리고 궁장 내부구조는 외 벽면과는 달리 막돌과 점토를 판축하는 형식으로 상단에 이르게 하였다. 궁장 상부구조는 성곽구조와는 전혀 다른 형식으로 일반 가옥과 같이 연목을 걸치고 그 위에 개판을 한 다음 기와를 얹은 다음 맞배지붕 형태를 취하였는데, 지붕 재료는 암수 기와를 사용하고 마구리는 막새기와를 사용하는 대신 와구토로 마감하였다. 경복궁 궁장은 궁궐의 남쪽 좌우측의 모퉁이에 각루를 두었다. 지금은 동남쪽 동십자각이 남아 있어 각루의 한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이러한 궁장은 도성이나 읍성을 비롯하여 유사시 대피성인 산성의 구조와는 많은 차이가 있다. 삼국 이래 전승되어 온 궁궐을 둘린 궁장 형식으로 경복궁을 비롯하여 여러 궁성의 궁장은 다소 규모의 차이를 보이나 그 형식은 유사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