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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구려 흘승골성, 국내성, 안학궁성, 장안성

by bibianinto 2024. 11. 2.

이 글에서는 고구려의 도성 변천사를 다룬다. 기원전 37년부터 668년까지 존속한 고구려는 흘승골성, 국내성, 안학궁성, 장안성 등 총 4개의 도성을 두었다. 각 도성의 지리적 특성, 건축 구조, 규모, 방어 체계를 알아보고, 초기 산성 형태에서 평지성을 거쳐 최종적으로 평산성 형태로 발전하는 과정을 종합적으로 알아보겠다.

흘승골성

고구려는 기원전 37년에 건국하여 668년에 멸망되기까지 28대 705년간 존속한 나라이다. 고구려는 도읍지를 4번이나 정하고 천도를 3번이나 하였다. 첫 번째의 천도는 유리왕 22년(기원전 3년)에 도성을 흘승골성에서 국내성으로 옮기고, 이어 장수왕 15년에 국내성에서 안학궁으로, 평원왕 28년에는 안학궁에서 다시 장안성으로 옮겼다. 고구려는 처음에 비류강 유역에 있는 졸본부여에 도읍을 정하였다. 이 졸본부여의 도읍지로 위서의 흘승골성으로 알려진 오녀산성으로, 환인현 소재지에서 동북쪽으로 약 8.5km에 있는 오녀산에 축조한 성이다. 환인의 오녀산성은 장방형의 산봉형세의 산지에 마련되었는데, 규모는 남북길이 약 1,000m, 동서너비 약 300m, 성곽 전체둘레가 약 2,440m 되는 큰 산성이다. 오녀산성은 동남쪽으로 큰 골짜기를 끼고 있고, 서남과 동북쪽에는 약간 낮은 곳이 있으나, 서쪽, 북쪽 및 동북쪽의 대부분은 수십 미터의 절벽을 이루는 천연 요새지형이다. 성벽은 동남쪽, 동쪽에 주로 축조, 동북과 북쪽은 절벽사이에 일부구간에만 축조하였으며, 서쪽은 자연지세를 그대로 성벽으로 삼았다. 현재 성곽의 성벽 잔존높이는 3-6m 내외이고, 성문은 북문을 제외하고 동, 서, 남쪽에 마련되어 있으며, 동문에는 옹성까지 마련되어 있다. 또한 성내에는 천지라는 연지와 군사를 지휘했다는 장대가 남아 있다.

국내성

고구려 유리왕에 수도를 현재 길림성 집안시 서쪽지역의 국내성으로 천도를 하게 된다. 국내성은 압록강과 통구강이 합류하는 통구분지의 서부일대로 북쪽 약 1km 지점에 우산, 동쪽 약 6km 지점에 용산, 그리고 통구강을 건너 서쪽 약 1.5km 지점에 칠성산에 있어 전형적인 배산임수의 천연 요새지역이다. 국내성은 동서방향이 다소 긴 평지의 방형성이다. 국내성은 동벽이 555m, 서벽이 665m, 남벽은 750m, 북벽은 715m로 성 전체의 둘레가 2,686m에 이른다. 당초 성벽의 높이는 5~6m, 하부 폭은 10m, 성 내벽에서의 성벽 높이는 3~5m 내외로 조사되었다. 성문은 남, 북면에 각각 한 곳, 동 서면에 각각 2곳으로 전체 6개소로, 대부분 성문에는 옹성까지 마련되어 있었다. 동문은 집문문, 서문은 안무문, 남문은 금강문으로 불렸다. 성벽에는 전체 16개소나 되는 치가 마련되어 있었다. 국내성은 성 내부를 3개의 구역으로 구분하여 조성하였다. 궁전 지역은 궁성의 제일 북벽의 안쪽에 조성되었고, 다음은 공공건물과 관아건물지역이고, 나머지 남쪽지역은 민가지역과 시장 등이 있었다고 한다. 국내성은 평지에 처음 마련된 도성으로 유사시를 대비하여 대피할 수 있는 인근지역에 산성을 마련하여 대피성으로 삼았다. 즉 국내성의 서북지역의 대피를 위한 위나암성의 대피성을 별도로 마련하였다.

안학궁성

안학궁은 장수왕 15년에 국내성에서 대성산 소문봉 바로 남쪽기슭 언덕에 안학궁과 배후산인 대성산에 대피산성인 대성산성을 마련하여 천도하였다. 안학궁은 대성산을 등지고, 남쪽으로는 대동강이 흐르고, 서쪽에는 합장강이 동쪽에는 장수천이 흐른다. 즉 안학궁은 동서남면으로 강이 흐르고 뒤에는 높은 산을 등진 평지성이다. 안학궁성은 능형으로 된 정방형에 가까운 평지의 방형성으로 동쪽성벽은 622m, 서쪽성벽 623m, 남쪽성벽 617m, 북쪽성벽 618m로서 전체 2,488m이다. 성벽구조는 하부에 3~7단으로 돌을 쌓고, 그 위에 흙을 다져 높이 약 12m 정도 되는 성벽을 쌓아 올렸다. 궁성의 동서외부에는 깊이 0.8-1.2m의 해자를 두었다.

장안성

장안성은 현재의 평양성으로 양원왕 12년부터 35년간에 걸쳐 대규모의 도성을 마련한 다음 평원왕 27년에 안학궁에서 장안성으로 도읍지를 옮겼다. 평안성은 평야의 중심부로 둘레 23km에 달하는 대규모의 성곽으로 산지와 평지의 자연지세의 장점을 잘 살려 축조한 도성이다. 평양성은 북성, 내성, 외성, 중성 등 4구역으로 구분된다. 북성은 모란봉일대의 산지지역으로 궁성과 궁전을 보호하기 위한 성이고 내성은 만수대를 중심으로 한 지역으로 내성 내에는 궁궐건물이 있었다. 중성은 내성과 외성 사이 구간으로 중앙관료기구와 관리, 금위군, 무기창고 등이 있었다. 외성은 평천구역일대의 넓은 구역으로 외성 내에는 일반 수공업자, 상인 등 서민이 거주하였다. 외성에는 이방제를 설치하여 일반주민들은 이방제 내에 살았다. 현재의 평양성의 성문은 고구려 때의 성문으로 확인되는 것은 많지 않다. 고구려의 평지 도성은 산성과 함께 한 개의 방어체계를 형성하면서 평지성과 산성이 합쳐 한 개의 통일적인 성 체계를 형성한 평산성으로 발전하였다. 국내성과 환도산성은 거리가 5리이다. 안학궁은 대성산 수문봉 바로 남쪽 기슭의 언덕에 자리하고 있다. 즉 고구려의 도성의 변화발전과정을 살펴보면 최초 산성인 흘승골성으로부터 전형적인 평지도성과 산성과 결합된 형식의 평산성인 장안성으로 발전하였다고 할 수 있다. 지금까지 고구려의 흘승골성, 국내성, 안학궁성, 장안성 등 총 4개의 도성에 대해서 알아보았다.